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서울의 봄> 줄거리, 역사적 배경, 총평

by n잡러의 돈모으기 2024. 1. 31.
반응형

서울의 봄 줄거리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1979년 10월 26일~ 1980년 5월 17일 사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 비유한 것입니다. 서울의 봄은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5.18 광주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으로 229명의 사망자·실종자와 3,000여 명의 부상자를 남긴 채 무력 진압되면서 종결됐습니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김의성  배우 등이 주연을 맡은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광의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반란을 막기 위해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립이 이어지는 9시간 동안의 상황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10.26 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봄'은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긴 유신 체제가 끝나고 짧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깃든 시기를 말합니다. 진압군의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전두광(황정민)과 대립하는 선(善)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연출적인 면에서 많은 가공을 거쳐 극적으로 탄생한 인물입니다. 영화는 박대통령 암살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방안보사령관 전두광과 그를 따르는 민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군대가 정치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믿는 수도방위사령관 이태신이 전두광에 맞서 싸우는 내용입니다. 진압군과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의 대립 속에서 모두가 갈망하는 서울의 봄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역사적 배경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 17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단행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 중에 제4공화국의 두 번째 정부인 최규하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1979년 12월 6일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하여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긴급조치에 의해 처벌받은 재야인사들을 복권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유신 체제가 끝나고 민주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습니다. 윤보선 등 시민사회 원로는 대통령 최규하에게 유신헌법 폐지 및 민주적 선거를 요구했습니다.

학원 민주화 투쟁 와중인 1980년 4월 9일에 성균관대학교에서 '병영집체훈련 거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유신정권 시기부터 당시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들어가 열흘간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민주화 바람이 불자 학생들은 당연히 이 불합리한 훈련에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병영집체훈련의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과 시위가 다음 입소 차례였던 서울대와 서강대 등 여러 대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80년 4월 24일 서울 14개 대학 361명의 교수들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사학의 족벌체계 비판, 군사교육 개선책 모색, 재임용제도 철폐, 교수회의 기능 강화, 대학별 교수협의회 구성 등 대학교육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항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교수들은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교수들과 함께 해직되었습니다.

1980년 5월 여야는 같은 달 20일 국회를 열어, 계엄령 해제와 유신헌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5월 1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청하는 대규모 대학생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월 초부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했습니다. 1980년 5월 15일 오후 1시경 남대문에서 학생시위대가 버스를 탈취하고 전투경찰을 향해 돌진,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해 수명이 부상하고 1명의 경찰이 사망했습니다. 이에 신군부는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5월 20일 예정된 임시국회를 무산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군부 주도로 정국을 이끌어나갔습니다. 군부는 5월 17일 단행된 조치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했고, 이로써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습니다.

 

 

총평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시대극으로 1987년 민주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 유신독재를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차례로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앞선 3편은 모두 관객수 평균 800만 명을 달성하며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서울의 봄에 대한 흥행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울의 봄은 개봉 4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이는 개봉당일 1000만을 돌파한 범죄도시 3과 영화 밀수에 이어 2023년 영화 중 3번째로 빠른 속도입니다. 2024년 1월 말 현재 서울의 봄은 1300만 명을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 관람 후 평점은 9.3점으로 한동안 서울의 봄 챌린지가 유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자신의 최고 심장 박동수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영화가 제대로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미 결말을 알면서 보지만 영화가 끝을 향해갈수록 진압군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전두광 역할을 맡은 황정민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지 않은 요즘 세대들이 영화 관람 후 실존인물들과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찾아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미디어의 순기능으로 한국사에 큰 관심을 갖게 해 준  긍정적인 효과라 생각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