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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어원과 역사, 설날을 지내는 이유

by n잡러의 돈모으기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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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어원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은 우리나라의 명절입니다. 설날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날인데요,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삼국시대 문헌에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의례, 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합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밖에 설을 양력 1월 1일 신정(新正)의 상대적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에는 설을 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한편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게 되는 거죠. 설을 한 번 쇠면 1년이며,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합니다. 이밖에도 설이 새해 첫 달의 첫날, 그래서 아직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 등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을 설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설날과 보름명절을 크게 여겼는데요.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날로서 중요하며, 보름명절은 농경성(農耕性)을 그대로 반영하여 중요하였습니다. 곧 농경국가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되어 최대의 날이 된 것입니다. 

 

 

설날의 역사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수서』와『당서』에서는 신라가 왕권국가로써 설날을 지내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매년 정월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 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은 국가 형태의 설날 관습이 분명하게 보이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설명절이 역법체계에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3세기에 나온 중국의 진수가 쓴 역사서『삼국지』위서 동이전을 통해서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은 정월, 그리고 5월과 10월의 농공시필기 등과 같은 표현은 당시 역법(曆法)을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은 정월은 은나라의 역법을 지칭하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음력 섣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당시 부여나 고구려와 같은 부족국가들이 역법을 사용했다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따라서 역법을 통해 각 달을 가늠하고 세수(歲首)인 설이 존재했다는 것은 자연스레 추측이 가능해 보입니다. 다만 나라에 따라 설을, 또는 정월을 언제로 설정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 문헌에도 설명절의 연원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삼국유사』 기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라 21대 비처왕(혹은 소지왕) 때 궁중에서 궁주와 중의 간통사건이 있어 이들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후 해마다 상해·상자·상오일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하여 달도(怛忉)라 했습니다. 달도는 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므로 설의 유래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해·상자·상오일은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에 해당되는 날로 이때의 금기를 비롯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고려사』에서도 고려 9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이라 칭하는 설을 의미하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원단·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로 지냈으며 민간에서는 전 시대보다 세시명절과 그 무렵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매우 다양했다고 합니다.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정성스럽게 차린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십니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합니다.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여자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습니다. 노랑이나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는 오늘날까지도 설에 어린이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인 옷입니다.

설에 먹는 명절식으로 우선 꼽히는 것은 떡국입니다. 설에 먹는 음식인 세찬(歲饌)은 차례상에 오르고 명절식으로 먹게 됩니다. 세찬에는 가래떡을 넣어 끓인 떡국 외에 시루떡도 있습니다. 고사를 지낼 때의 시루떡은 붉은팥시루떡을 쓰지만 차례를 지내는 시루떡은 붉은팥시루떡은 금하기 때문에 거피를 한 팥을 사용하여 떡을 찌게 됩니다. 이밖에 인절미·전유어·빈대떡·강정류·식혜·수정과 등도 세찬으로 만듭니다. 세주는 맑은 청주이며 역시 차례상에 오르고 산뜻한 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차례를 지낸 후 가족들이 함께 음복을 합니다.

 

설날을 지내는 이유

설은 우선 한 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은 신성성을 갖지는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설은 공휴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이는 전통 명절로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음식을 하고 초하루로서 차례를 지내는 날입니다. 조상님께 자손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조상님들의 성묘를 설 전후하여 다녀오게 됩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설 명절의 그런 의미가 퇴색되고 연휴를 이용하여 국내외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면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촌과 같이 설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을 가족 단위로 찾는 문화가 자리 잡기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신년을 두 번 맞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설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오늘날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와 같은 인사말을 연간 두 번에 걸쳐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새해에 이미 인사를 하고 다시 설에 똑같은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실상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신년 인사말은 전통적인 덕담이 아니라 새로 생긴 현대판 덕담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일상력인 양력으로 새해를 맞았을 때에는 신식 덕담을 나누고 우리 전통명절인 설날에는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과세 편안히 하셨습니까”와 같은 전통적인 인사말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는 설이라는 전통문화를 소박하게나마 이해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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